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고성과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시간의 흔적과 젊음의 활기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장엄한 고성에서 옛 영주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유서 깊은 대학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이 싹튼다. 이 모든 풍경 속에는 평생 물 대신 와인을 마시며 80세까지 장수했다는 기이하고도 매혹적인 전설의 주인공, 페르케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이곳 하이델베르크에서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도시의 상징인 하이델베르크성이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푸니쿨라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도 있지만, 천천히 걸어 오르며 성 주변의 분위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성은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파괴의 흔적이 역력했다. 화려함과 동시에 폐허 같은 쓸쓸함이 공존하는 그 독특한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이델베르크성은 13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이후 신성로마제국 시대 팔츠 선제후들의 거주지로서 화려한 역사를 자랑했다. 그러나 17세기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과 프랑스군의 끊임없는 침공, 그리고 불운한 번개 화재까지 겹치며 성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성을 복구하려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전히 복원되지 못한 채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건물 대부분이 멀쩡해 보이지만, 막상 다가가면 외벽만 얇게 남아있는 곳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성 내부는 일부 구간만 일반에 개방되어 있지만, 뒤쪽 테라스로 나가면 하이델베르크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네카어강을 따라 이어진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탁 트인 시원함과 함께 그림 같은 도시 풍경을 선사한다.
성 지하 깊은 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무려 22만 리터가 넘는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와인통, ‘하이델베르크 툰’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과거 팔츠 선제후들이 세금으로 거둔 와인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통은, 당시 이 지역의 풍요로움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와인통을 지키듯 그 앞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목조 조각상이 서 있다. 18세기 하이델베르크성의 와인 저장고를 관리했던 난쟁이 ‘페르케오’다.
전설에 따르면 페르케오는 ‘물 대신 와인’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 방식을 고수하며 80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누군가 와인을 권하면 이탈리아어로 ‘Perché no?(왜 안 되겠어?)’라고 답하며 늘 엄청난 주량을 뽐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삶은 오직 와인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장수 비결이던 와인에 대한 신념은 깨지는 순간이 왔다. 어느 날 건강을 염려한 의사의 간곡한 권유로 그는 난생 처음 와인을 끊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페르케오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와인이 그의 생명수였던 셈이다. 그렇게 페르케오는 하이델베르크의 거대한 와인통과 함께, 이곳의 역사와 전설을 대변하는 상징처럼 영원히 남아있다.
한편 하이델베르크성 한켠의 오토 하인리히관에는 독일 약국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중세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럽 약학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약국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는 특히 흥미로운데, 유니콘의 뿔로 둔갑한 일각고래의 뿔이나 강함을 상징하던 악어 표본 등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약재들이 가득했다. 당시 사람들은 약학과 미신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병을 치료하려 애썼던 것이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내려와 고즈넉한 콘마르크트 광장에 다다른다. 1700년대에 세워진 왕관을 쓴 성모 마리아상이 광장의 중심을 지키고 그 뒤로 하이델베르크성이 늠름하게 도시를 내려다본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저서 ‘유럽 방랑기’에서 하이델베르크성을 ‘폭풍에 시달려 왕관을 잃은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왕처럼 위엄 있고 아름답다’고 묘사했다. 콘마르크트 광장에서 바라본 성은 그의 문장 그대로였다.
강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칼 테오도르 다리로 발걸음을 옮기면, 다리 초입에는 유명한 원숭이상이 서 있다. 거울을 들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이 원숭이상 옆에는 17세기에 쓰인 시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왜 나를 쳐다보는가? 주위를 둘러보면 나 같은 원숭이는 더 많을 텐데.” 이 문구는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풍자와 겸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동상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울을 만지면 다시 이곳을 찾게 되고, 원숭이의 손을 만지면 행운이, 옆에 있는 작은 쥐를 만지면 부가 찾아온다고 한다. 원숭이 가면 속에 얼굴을 넣어보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도 있는데,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원숭이에 빗대어 깊이 성찰해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는 곳곳에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흥미로운 장치들을 숨겨놓고 있다.
다리를 건너 강변의 좁은 틈에 빽빽이 채워진 사랑의 자물쇠들과, 강물 위로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이내 철학자의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길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들과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색을 즐겼던 산책로로, 헤겔과 하이데거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곳을 거닐며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종종 칸트가 이곳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기에 이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주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구불구불한 ‘뱀의 길’이라 불리는 구간을 오르면, 키보다 높은 벽돌 돌담이 양옆으로 이어지고 초록빛 이끼가 군데군데 켜켜이 쌓여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두 명이 간신히 비켜갈 정도의 좁은 길을 걷는 내내 새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자연스레 마음은 고요한 사색에 잠기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철학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체력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스쳐 지나간다.
언덕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네카어강 건너편으로 구시가지와 웅장한 하이델베르크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해 질 녘에는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하이델베르크성의 붉은 벽돌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아침에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강 위에는 고요한 안개가 낮게 깔려 적막함이 공기를 감싸고, 성 뒤편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햇빛이 도시를 서서히 비추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같은 장소였지만 시각에 따라 이토록 다른 두 장면을 선사하는 이곳에서, 철학자들이 왜 이 길을 오가며 깊은 사색에 잠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철학자의 길에서 신시가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조용한 주택가로 이어진다. 이곳은 대학 교수나 석학들이 많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주택인데 문 앞에 ‘물리학부 도서관’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건물을 발견했을 때, ‘대학의 도시’라는 하이델베르크의 명성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1386년에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 곳곳에 대학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고성의 폐허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아름다움, 고요한 사색을 부르는 철학자의 길, 그리고 젊음의 활기가 넘치는 대학가. 하이델베르크는 서로 다른 시간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이다. 괴테는 이곳에서 뜨거운 사랑에 빠져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를 수시로 오가며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했다. 이곳을 걷다 보면 누구나 잠시 생각에 잠겨, 일상 속 낭만적인 사람이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페르케오의 기이한 전설처럼, 하이델베르크는 우리에게 틀에 박히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과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하는 도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