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 주제랑 관련도 없는 글을 장문으로 쓰게 된 것에 먼저 양해를 구함.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조혈모 기증이라는게 백혈병 환자들한테 건강한 조혈모(피를 만들어주는)세포를 이식해주는, 옛날에 골수이식이라고 불렸던 그거 맞다. 다만 옛날처럼 골반뼈에 주삿바늘을 박아넣고 직접 골수를 뽑아내는 방식은 정말 부득이한 경우에만 하고 지금은 성분헌혈이랑 비슷하게 피를 뽑아서 걸러내는 말초혈 방식이 훨씬 보편적이지.
원래 이런거 막 자랑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닌데, 워낙 해보기 힘든 경험이기도 하고 또 이런거에 막연히 두려움이나 생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협회에서도 온라인 후기를 은근히 장려하는 느낌이더라고. 그래서 경험담 들려주는 겸 해서 어떤 과정으로 기증이 진행이 된건지 한번 자세하게 썰을 풀어볼까 해.
사실 메인 갈까봐 쫄려서 쓰기 전에 좀 망설였는데 어차피 힛갤 없어질 예정이라니까 가든말든 그냥 신경 끄고 맘 편하게 써보기로 함.
본문에 중간중간 삽화도 들어가있는데
물론 본인 대역은 우리집 뉴키드가 맡아줄거임!
조혈모 기증을 하고 싶으면 우선 근처 헌혈의 집으로 가서 기증희망등록 신청을 해야 함. 가끔 헌혈하러 간거 인증하는 사붕이들 좀 있던데 여기까지는 뭐 쉽겠지? 참고로 신청은 만 18세부터 40세까지만 가능하고 기증은 55세까지 가능.
기증신청을 하면 혈액 샘플을 조금 뽑아가서 HLA항원이란걸 검사하게 되는데 이게 환자 꺼랑 거의 대부분 일치해야 기증을 할 수 있게 되는거임. 협회에서 말하기로는 이게 약 2만분의 1 정도 확률이라고… 한 번 샘플을 뽑아가면 혈액관리원 데이터베이스에 기증희망자 신상이랑 항원 정보가 저장돼서 추후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생기면 적합한 기증자를 찾아서 기증 의사가 있는지 다시 묻게 돼.
신청을 한지 1년 반쯤 지났나, 퇴사하고 나와서 다시 공부 중이던 몇 달 전에 전화가 한 통 걸려옴.
발신자에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라고 적혀있었는데 이 때 진짜 놀랐음. 위에서도 말했듯이 서로 맞는 수혜자랑 기증자 찾는게 진짜 극악의 확률이라 신청하고 나서 환자랑 매칭이 되기까지 십수년 걸리는게 다반사고 심하게는 수십년동안 감감 무소식인 경우도 허다하다고 들었거든. 실제로 나중에 협회 코디 분이 이렇게까지 빨리 매칭되는 사례는 진짜 드문 편이라고 말씀하시더라.
설마 하면서 받았는데 진짜로 맞는 환자를 찾은거 같다면서 가족들이랑 상의를 잘 해보고 며칠 뒤에 결정해달라 함. 엄마가 위험할거 같다면서 좀 걱정을 하긴 했는데 다행히 설득이 잘 돼서 바로 오케이 했지. 마침 다시 취업하기 전에 시간 널널할때 하는게 좋을거 같기도 했고.
1차 탐색은 대략적인 정보만 보고 하는거라, 기증에 동의하고 나면 항원이 제대로 일치하는게 맞는지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하게 됨. 이 단계에서 막히는 사람들도 꽤 된대.
난 집이랑 협회 본부가 그렇게 멀지도 않고 또 취준생이라 시간 제약도 없어서 직접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너무 멀다거나 바쁘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으면 따로 키트를 부쳐줘서 근처 헌혈의집 찾아가라고 한다더라.
대로변에 번듯한 빌딩이 하나 있으려나 했는데, 협회가 있는 건물이 생각보단 조금 외진 곳에 있더라구. 사진 찍는걸 깜박해서 네이버 지도 로드뷰를 가져와봄…
협회를 찾아가면 혈액검사 샘플 채혈이랑 혈압검사를 하기 전에 이런 파일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진행될 일정을 설명하고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알려줘. 더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보다시피 말초혈 방식 기증은 아주아주 오래 걸리는 성분헌혈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됨.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모든 자리 일치한다고 기증에 문제 없다 하심. 그러고 나서 기증 날짜를 환자 수술 일정이랑 같이 조율하게 돼.
참고로 기증 2주 전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됨. 이 때부터 환자는 조혈모 이식 수술을 받기 전에 초고농도 항암제에 방사선으로 몸 속에 있는 불량 조혈모세포들을 다 죽여놔야 하는데 이 때 갑자기 기증을 포기하면? 환자가 그냥 죽게 되는거임. 살인이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협회에서도 진짜로 기증이 가능한게 맞는지 거듭 물어보면서 확인하고, 실제로 기증자가 입원하려고 병원으로 오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기증자랑 환자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대.
일정이 다 확정되고 나면 기증하게 될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건강검진을 받아야함. 혈액검사랑 심전도 검사에 엑스레이, 소변검사까지 다양하게 받는데, 아무래도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기증을 하는거라 그런지 혈액검사를 제일 꼼꼼하게 하는거 같음. 피 샘플을 무슨 9통이나 뽑아가더라.
건강검진 날엔 금식을 하고 와야 했어서 다 끝날때쯤에는 배고파 디지는줄 알았는데, 동행하러 와주신 협회 코디님이 병원 근처 카페에서 법카 긁어서 커피랑 샌드위치를 사주심. 쫄쫄 굶다가 먹어서 그런지 진짜 개꿀맛이었다.
기증 3일 전부터는 이런 촉진제 주사를 보내줘서 맞게 함. 원래 백혈구 감소증 환자들이 주로 맞는 약인데 말초혈 방식으로 기증을 하게 되면 피에서 조혈모세포들을 걸러내서 뽑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몸에다가 많이 풀어놔야 하니 도핑(?) 비슷한걸 하는 원리지. 그래서 기증이 끝난 직후에는 백혈구 수치가 정상수치의 수십배 정도로 막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데 건강한 사람들은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몇 주 정도 걸린대.
이건 건강검진처럼 직접 종합병원 왔다갔다 하면서 맞을 필요는 없고 협회에서 집 근처 민간병원에다가 협조를 미리 구해줘. 그럼 그 병원으로 매일 주사를 들고 가서 맞으면 됨. 물론 이 때 들어가는 진료비는 다른 비용이랑 마찬가지로 영수증 보내주면 협회에서 나중에 공제해주는 식. 기증까지 들어가는 비용 중에 기증자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도 없다고 보면 돼.
저걸 매일 맞게 되면 이틀차부터 두통이랑 근육통, 미열 등 몸살감기랑 비슷한 증상이 나오는데 그때 먹으라고 아세트아미노펜 진통제도 넉넉하게 보내준다.
기증 하루 전날에는 2박3일간 입원을 하게 됨. 전날 입원해서 주사 한 번 더 맞고 이틀차에 피 뽑고 휴식 취하다가 사흘차에 퇴원하는 식. 옛날에는 이거 때문에 공무원이나 대기업이 아닌 직장인들은 휴가 내서 기증 진행하는게 어려웠다는데 지금은 유급휴가 보장되게끔 법이 바꼈다더라고.
기증자들이 워낙 귀한 몸(?)이다보니 협회에서 1인 병실을 끊어줘서 최대한 편하게 지내게끔 하는데 나중에 영수증 보니까 사흘 입원하는데 무슨 입원료만 백만원이 넘게 나오데… ㅎㄷㄷ하더라
화장실도 거의 호텔급.
협회에서 병원밥도 특식으로 끊어줬는지 반찬이 진짜진짜 잘 나옴. 하도 병원밥 맛없다는 소리가 많길래 별 기대 안 했는데 김치 빼곤 전부 괜찮더라.
단기 입원할 일 있으면 병원밥은 꼭 특식으로 먹자. 대신 당연히 입원료는 그만큼 더 뛰겠지만…
병실에 냉장고도 있었는데 음료수는 병원에서 채워주는거 같고 빵은 협회에서 나온 코디 분이 간식으로 먹으라면서 놓고가심. 잘 먹었습니다 히히
여튼 그렇게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주사 한 번 더 맞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식사 끝나고 바로 채혈실로 내려가서 본격적으로 피를 뽑게 된다.
조혈모 채취는 대강 이런 식으로 진행됨. 한쪽에서 피를 뽑아가서 원심분리기에 탈곡 좀 하고 조혈모세포를 걸러내서 모으면 남은 피는 다른 쪽 팔에 도로 넣어주는 방식. 성분헌혈이랑 거의 비슷한 방식인데 그게 아주아주 오래 걸림. 난 한 4~5시간 정도 걸려서 뽑았나?
피 뽑는 쪽 팔에는 헌혈할 때 쓰는 굵직한 쇠바늘을 그것도 팔꿈치에 박아넣는거라 움직이면 큰일나고, 피가 잘 뽑혀나오게 간호사가 준 고무 뭉치만 계속 주물럭해야 함. 대신 반대쪽 팔에는 흔히 링거 맞을 때 쓰는 가느다랗고 유연한 바늘이 들어가서 핸드폰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 물론 그것도 쓸데없이 오래 하면 막 저리고 아프다.
참고로 실제로는 헌혈할 때처럼 눕는 의자에서 진행을 했는데 저기선 편의상 침대로 그렸어.
자는 것처럼 그렸는데 잠들어도 안 됨ㅋㅋㅋ 한 번 나도 모르게 깜박 졸았는데 피 안 뽑혀나온다고 기계가 막 삐삐거리면서 발광을 하드라.
내 팔에서 뽑혀나온 피가 기계로 들어가서 탈곡되는 걸 직관하고 있으려니 꼭 착즙당하는 듯한 느낌이었어.
실제로 보면 피가 막 콸콸 쏟아져나오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어서 기분이 먼가먼가임…
끝날때쯤 기계 모니터를 보니까 피가 거의 15리터 씩이나 뽑혀나왔던데 몸 속에 있는 피가 평균 3번씩은 바깥 구경을 하러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는 뜻. 어으…
핸폰 들여다보는게 지겨워지면 TV도 보고싶은 걸로 틀어서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환자분께 보내줄 팩이 조금씩 채워짐.
이거 하나 얻자고 다들 얼마나 고생을 하신건지…
피 넣어주는 바늘은 채혈이 끝나고 나서도 바로 안 뽑아주고 임시방편으로 식염수만 넣어줬다가 나중에 간호사가 오케이 하면 뽑으러 와주심.
세포가 조금 덜 모이면 다음날에 다시 뽑아야 해서 그렇대.
쇠바늘 꽂았던 팔은 물론 더 신경써서 지혈해주시는데, 그러고도 퇴원하고 2주동안은 멍이 크게 들었었어.
양쪽 팔엔 아직 흉터가 있는데 영광의 상처니까 만족함.
퇴원하면서 주의사항으로 하시는 말씀이 피 뽑아다가 탈곡하는 중에 혈소판이 많이 빠져나간 상태라 (너무 작아서 걸러내지를 못한다함) 당분간 어디 부딪혀서 멍 안 들게 조심하라 하더라고.
약 3주동안 금연 금주는 덤이고.
물론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 술도 많이 안 한다만…
그렇게 퇴원하고 2주 정도 지나서 협회에서 정해주는 집 근처 내과로 가서 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피검사 받아서 결과 보내주면 진짜로 끝나는거.
첫짤처럼 협회에서 저렇게 감사패도 깎아서 보내줌.
사람 하나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불려가고 피 뽑히고 하면서 생명의 무게라는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거나 반복하고 있을 시간을 누군가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인생 2회차를 위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피 한 봉지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괜시리 숙연해지는 기분이더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몸으로 때우면서 적선하려면 건강관리 좀 더 신경써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음. 주사 맞으면서 헤롱헤롱 하던것도 그렇고 입원 이틀차에 피 뽑고 병실로 돌아오고 나더니 피로가 확 몰려오는게 나중 가면 이런거도 몸이 안 따라줘서 못 할 수도 있겠구나 싶던게…
감사패는 피규어랑 같이 놔두고 보관 중임.
애기들이 지켜주고 있으니 든든한 것…
어렸을 때 가시고기 읽어보고 나서 골수기증 한 번쯤 해보는게 버킷리스트가 됐는데,
인생겜 히든퀘 하나 깨버린 듯 속이 후련~하다.
출처: 사우스파크 갤러리 [원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