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 막바지, 파격적인 재개발 인가 단행
퇴임을 불과 2주가량 앞둔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의 사업시행계획안을 전격 인가했다. 이는 곧 물러나는 현직 구청장의 마지막 주요 행보로 기록될 것으로 보였다. 서울 종묘 인근에 위치한 세운4구역은 그 역사적 가치와 개발의 필요성이 팽팽히 맞서는 지역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새롭게 선출된 유찬종 종로구청장 당선인의 공식적인 중단 요청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향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었다.
차기 구청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단행된 결재
유찬종 당선인은 이미 자신이 취임하기 전 세운4구역 사업이 인가될 경우, 관련 공무원들의 감사와 책임 추궁을 검토하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종로구에 전달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문헌 구청장은 직접 결재를 강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종로구는 전날 오후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를 서울시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명백히 현직과 차기 구청장 간의 행정적 충돌로 비쳐졌다.
세계유산 종묘의 존엄성과 개발 이익의 충돌
이번 종로구의 결정이 고시 및 공고 절차를 거치게 되면 세운4구역 개발을 위한 행정 절차는 국가유산청 자문기구인 국가유산위원회의 매장유산 심의만을 남겨두게 된다. 그러나 서울시와 종로구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유산청이 이미 내린 행정 명령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5월, 세운4구역 재개발이 세계유산 종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지적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선행한 후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진행하라는 조치 이행 명령 공문을 시와 구에 보냈었다. 이는 개발 이익과 세계유산 보호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초고층 빌딩, 종묘 경관을 위협하는가
세운4구역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가 고도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기존 종로변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까지 높이를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획기적인 고도 완화는 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에 들어설 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개발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개발 지연 우려와 문화유산 보호의 저울추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 경계로부터 약 180m 떨어져 있어 법적으로 정해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 100m 이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향평가 없이 사업을 추진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는 또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을 경우 사업이 크게 지연될 것을 우려하며, 이는 도시 재개발 사업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개발의 속도와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의 입장과, 인류 공동의 자산인 세계유산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가유산청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임기 말 행정과 차기 행정의 충돌, 그 해법은?
이번 사태는 임기 말 행정의 적절성 논란과 더불어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렸다. 새롭게 취임할 유찬종 구청장에게는 현직 정문헌 구청장의 강행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복잡한 행정적, 법적 문제를 풀어야 하는 큰 부담이 지워졌다. 동시에 이는 고도 제한 완화를 통한 사업성 확보와 세계유산 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할 때,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향후 이어질 행정 절차와 관련 기관 간의 협의 과정이 주목되며, 현명한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